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세 가지는? 개인마다 대답은 다르겠지만 요즘 세대들은 단연 휴대전화를 꼽는다. 통신이 '두절'되지 않고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돼야겠지만 '단절'된 세상과 연결해 주는 통로이자 무료함을 달래 주는 친구로 이보다 좋은 것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인도에 홀로 남게 된다면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되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외부 세계와 단절되다' '연락이 두절되다'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대개 '단절(斷絶)'은 유대.연관 관계가 끊어지거나 흐름이 연속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두절(杜絶)'은 교통.통신 등이 끊어지거나 막힌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 두 단어를 바꿔 써도 의미가 통할까?
'두절' 대신 '단절'을 사용해도 무리가 없지만 '단절'이 올 자리에 '두절'을 쓰면 부자연스럽다. ''파리대왕'은 비행기 사고로 불시착한 무인도에서 문명과 두절된 채 생활하게 되는 소년들의 이야기다' '두 나라는 급기야 국교 두절을 선언했다' '역사는 두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된다'처럼 쓰면 어색한 문장이 된다. 모두 '단절'로 고쳐야 의미가 통한다.
그러나 '지난밤에 내린 폭우로 뱃길이 모두 단절됐다' '정전 사태로 섬 전체가 외부와 교신이 단절된 상태다'와 같이 '두절' 대신 '단절'을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단절'은 '두절'이 쓰일 수 있는 곳을 포함해 폭넓게 사용되는 반면 '두절'은 교통.통신이 끊어진 때만 쓸 수 있다.
무인도에 홀로 남게 된다면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되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외부 세계와 단절되다' '연락이 두절되다'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대개 '단절(斷絶)'은 유대.연관 관계가 끊어지거나 흐름이 연속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두절(杜絶)'은 교통.통신 등이 끊어지거나 막힌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 두 단어를 바꿔 써도 의미가 통할까?
'두절' 대신 '단절'을 사용해도 무리가 없지만 '단절'이 올 자리에 '두절'을 쓰면 부자연스럽다. ''파리대왕'은 비행기 사고로 불시착한 무인도에서 문명과 두절된 채 생활하게 되는 소년들의 이야기다' '두 나라는 급기야 국교 두절을 선언했다' '역사는 두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된다'처럼 쓰면 어색한 문장이 된다. 모두 '단절'로 고쳐야 의미가 통한다.
그러나 '지난밤에 내린 폭우로 뱃길이 모두 단절됐다' '정전 사태로 섬 전체가 외부와 교신이 단절된 상태다'와 같이 '두절' 대신 '단절'을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단절'은 '두절'이 쓰일 수 있는 곳을 포함해 폭넓게 사용되는 반면 '두절'은 교통.통신이 끊어진 때만 쓸 수 있다.

이은희 기자
이 기사에는 단절은 두절이 쓰이는 곳에 쓰일 수 있다고 되어 있고,
이와 동일한 내용이 어휘책 '국어의 고수(최성우 저)' 1권 157쪽에도 나온 것으로 확인되네요.
위 내용에 근거하면 1번 문제에서 선택지 1번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이의제기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문항은 법 문장을 정확히 독해하고 표현해야 하는 예비 법조인에게, 문맥에 맞는 정확한 단어의 사용 능력을
평가하고자 한 것입니다. '단절되다'는 '(1)유대나 연관 관계가 끊어지다 (2) 흐름이 연속되지 않다'의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이 가운데 (1)의 의미로는 '두절되다'와 서로 넘나들면서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답지 1과 같이
'연락(어떤 사실을 상대편에게 알리는 일)'이 어떤 의도를 지닌 누군가에 의해서 끊어졌음이 불분명하거나 확정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단절되다'를 쓰기 어렵고 '두절되다'를 써야합니다.'
어휘 사용의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기준에 관한 중요한 이의제기를 무시한 채
출제자들의 의도만 일방적으로 주지시킨 것에 불과하군요.
물론 일상적인 감에 의존하면 1번이 어색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위와 같은 '다른 해석'을 무시하고 출제자들의 해설을 받아들인다면
누구의 '감'이 정확한 것이냐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어휘 사용 능력을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언중들이 어휘의 올바른 의미를 학습할 때 공식적인 문서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공신력있는 언론사의 보도 내용과 전문적인 어휘 출판물의 해석을 무시한다면
어휘들의 정확한 의미차이를 해석하는 '모범적 기준'이 따로 있고
나머지 해석들은 모두 틀리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모범적 기준'은 대관절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가 문제가 되며
따라서 언중은 특정 학자들에 의한 이현령비현령식의 해석만 받아들여야 하는 셈이 되지요.
이의제기에 대한 답변이라면 단순 주장만이 아닌 합당한 근거 역시 제시되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공신력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한 반박에 대해 출제자 측이 성실한 답변을 했든가
아니면 이의신청을 받아들였어야 한다고 보네요.
지금은 어휘의 의미 차이에 관한 한 가지의 절대적 해석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니면 자기들이 모범 어휘집을 따로 발간해 주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