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3차시가 중후반으로 가고 있는 시점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수업이 아닐까한다. 어쩌면 이 진단고사가, 선생님 수업의 A부터 Z를 다 말하는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 나는 글을 따라가던 사람이었다. 문장을 파편적으로 따로따로 보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기출을 다시 풀 때마다 맞았던 문제는 틀리고 틀렸던 문제는 맞추는데 내가 왜 맞고 왜 틀리는지를 알지 못했다. 최악의 수험생이었다. 내가 어떤 부분을 아는지도 몰랐고, 어떤 부분을 모르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질문을 하는 방법도 몰랐다. 메타인지도 안 되고, 인풋도 못하고, 아웃풋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공부는 몰라도, 적어도 리트에는 적합한 유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관광 리트와 사실상의 초시를 보냈다. 그렇게 큰 패배감에 시달리게 됐다.
2. 내가 망한 이유는 내가 공부량이 적어서, 개념을 몰라서인 줄 알았다. 물론 그 부분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지만, 가장 큰 싱크홀이 있었다. 바로 어떻게 글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나 자신의 기준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번, 사실상의 재시는 내가 할 수 없는, 아니,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기준 확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때 박새봄 선생님의 유료특강을 보게 됐다. 언어이해 DNA를 깨우는 새봄 진단고사.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이랬다. 나는 언어이해 DNA가 없는 거 같은데. 언어이해 DNA를 깨우는 이라고 말하려면 진작에 있는 사람을 깨워야 하는 거 아닌가. 패배감에서 나오는 푸념이었다. 난 애초에 언어이해 DNA가 없으니 깨울 수도 없는 거 아닌가.
3. 그때 듣게 된 풍경론 지문에 대한 해설에서 신선하면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지금껏 읽었던 언어이해는 언어이해가 아니었구나. 언어를 감각하지도, 이해를 하지도 않았다. 난 지금껏 리트 공부를 한 것이 아니었구나. 이때 선생님께서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독해에는 정답이 없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의 독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리트에 적합한 방식이 아닐 뿐이다. 선생님의 그때 그 말씀을 절대 잊지 않는다. 그 말씀이, 나를 패배주의에서 나오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틀린 것이 아니었구나, 방식이 잘못된 것일 뿐이었구나. 이제 그 방식을 온전히 선생님의 방식으로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언어이해 DNA는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었는데 그 DNA를 어떻게 깨우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선생님께서 다른 건 몰라도, 이 특강 이름을 참 잘 지으셨다고 생각했다 :)
4. 그렇게 진단고사, 26 프리뷰 특강, 1차시, 2차시를 거쳤고 지금 3차시이다. 그 과정을 지나오면서 그리고 진행하면서 내 독해는 관광 리트와 사실상의 초시에 비하면 환골탈태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이제는 단어를 감각하는 것이 일상이고, 왜 이 문장이 나올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형식적으로, 구조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익숙해졌으며, 지문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틀렸다는 객관적 인식이 되고, 문제는 이 문제가 나올 수 밖에 없고 선지에는 지엽적인 것이 없을 수 밖에 없는지를 납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분명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패배감에 사로잡혔던 내가 패배감을 벗어 던지고 여기까지 온 것에는, 모든 것이 선생님 덕분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언어이해가 이렇게 재밌는 과정인지 몰랐다. 언어이해가 재밌으니 추리논증도 재밌고 논술도 재밌다. 시행착오도 바람직한 어려움인 것 같아 잘 넘겨내고 있다.
5. 새봄 선생님, 항상 열심히 강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패배의식을 내던지고 지금 과정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다. 이번 사실상의 재시, 선생님의 방식을 온전하게 채워나갔을 때 끝에 도달하는 독해를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끝에 도달하기 위한 독해를 해내기 위해서 선생님 수업 듣고 공부하고 부딪히고 깨닫는 것이니까요. 요즘 밴드에 분석을 못 올리고 있습니다. 늘, 어떤 분석을 해야 정형화된 틀을 깨뜨릴 수 있을지 이렇게도 저렇게도 분석하고 있거든요.. 이제는 밴드에도 조만간 많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따라가던 사람을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