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자는 우리에게 제시문을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많은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제시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제시문 자체가 짧으면 다행이지만, 제시문의 분량이 절대적으로 길거나, 조[규정](조문)처럼 낯선 형태의 제시문은 읽다보면 계속 끊기는 느낌이 드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또한, 어떤 한 문장이 이해되지 않으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제시문을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것인가에 관해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제시문을 순서대로 읽지 말자는 것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제시문 내에서도 읽기의 순서를 유연하게 바꾸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출제자는 우리에게 제시문을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으라고 한 적도 없으니까요.

[[규정]과 <사례>가 함께 등장하는 문항의 경우, <사례>를 먼저 공략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훗날 송무 변호사가 되어 어떤 의뢰인과 법률상담을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찾아온 의뢰인이 갑자기 이런저런 [규정], 즉 조문을 먼저 언급할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은 자신이 겪은 사건의 사실관계를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겠지요. 즉, <사례>를 먼저 접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례>를 접한 변호사는 이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규정]을 떠올리게 될 것이고, 그제서야 법전을 찾아 이 <사례>가 해당 [규정]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표현해보면, <사례>를 [규정]에 ‘대입’하는 작업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스런 사고의 방향입니다. 즉, 실제 시험에서도 <사례>가 [규정], 즉 조문보다 물리적으로 길지 않은 이상, 제시문의 순서 [규정]-<사례> 순으로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사례>를 먼저 읽고 [규정]에 대입해가면서 읽는다면, 매우 추상적이라고 느껴지는 [규정]이 상대적으로 구체적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먼저 [규정]부터 읽게 된다면, [규정] 자체에 압도되거나, 특정 문구에서 길을 잃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최근 [규정] 문항의 출제경향은 선택지를 판단하는데 전혀 사용되지 않는 조문을 제시문에 꽤나 많이 써 놓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조문이 선택지를 판단하는데 쓰였기 때문에 [규정] 부분을 먼저 읽어도 크게 손해가 될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적게는 1개, 많게는 2개~3개 조문이 아예 선택지 판단에 전혀 사용되지 않는 문항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례를 먼저 읽고 나서 [규정]을 보는 것은, [규정]의 여러 조문들 중 선택지 판단에 어떠한 조문이 주로 사용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논쟁 제시문의 경우 선택지에서 누구에 대하여 묻는지를 고려하여 공략 순서를 재구성해 볼 수 있습니다.]

논쟁 제시문의 경우 2명이 논쟁을 하는 경우, 3명이 논쟁을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심지어 6명이 논쟁을 하는 경우도 출제됩니다. 이 때 선택지를 먼저 관찰하고 나서 제시문 공략의 순서를 재구성하는 것도 반드시 시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2020-03] 문항의 경우 제시문에서 A, B, C, D, E, F 이렇게 6명이 논쟁을 벌입니다. 그런데 선택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ㄴ과 ㄷ의 경우와 달리 ㄱ은 가장 처음에 나오는 A와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F를 엮어서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시험장에서 A부터 F까지 순서대로 읽으면, 양자를 비교하면서 선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즉, A를 다시 봐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다시 봐도 되지만 시간이 아까울 수 있으니 선지관찰을 통해 A와 F를 먼저 읽고 나서 ㄱ 선지를 판단해야겠다 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접근도 가능합니다. ㄱ 선지와 ㄴ 선지는 강화 또는 약화 선지인 반면, ㄷ 선지는 명시적 요소 분석 선지에 해당합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지요. 이 경우 강화 또는 약화를 먼저 판단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부담스러워 하시는 수험생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아무래도 명시적 요소 분석보다는 상대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강화 또는 약화 선지를 먼저 판단해서 틀린 경험들이 있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ㄷ 선지에 해당하는 D와 E를 먼저 읽고 ㄷ 선지를 해결한 다음, A와 F를 읽고 ㄱ 선지 판단, 마지막으로 B와 C를 읽고 ㄴ 선지 판단을 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합니다.

뭐 그렇게 복잡하게 하느냐, 그냥 순서대로 읽고 풀면 되지 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도 일면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만, 모든 분들에게 이렇게 해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집중력을 높여야 하는 실제 시험장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제시문의 공략 순서를 살짝이라도 바꾸어보면, 정답에 다다를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문항들에서도 제시문 읽기의 순서 조정은 충분히 적용이 가능합니다.]

저는 이번 칼럼에서 두 가지 정도의 예만 말씀드렸지만, 다른 문항들에서도 제시문 구성의 형태에 따라 제시문 읽기 순서의 조정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것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적어도 제가 말씀드린 두 가지 경우라도 반드시 한번은 제시문 공략 순서 조정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짜 딱 한번만 해보고는 ‘아, 이거 나랑은 안맞아. 산만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순서대로 읽는 것이 낫겠어.’ 이렇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충분히 연습해 본 후에 기존에 본인이 사용한 방법과 비교해보시면서, 정확도와 속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갈 때 한 가지의 무기만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보다는 다양한 무기를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시문 공략 순서에 관한 유연성이라는 무기도 하나 장착하셔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정답에 다다르시기를 바랍니다.